기초 영어 공부 방법


발목을 잡는 영어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많은 경우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대학 입시부터, 취직 등 많은 관문에서 영어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spec이나 공부해야 할 무엇, 골치거리가 되기 쉽다.
그리고 사실 역지로 해야 하는 무엇은 그 자체로 그것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언어로서의 영어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듣기 따로, 말하기 따로 독해 따로 문법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학원에서는 클래스가 그렇게 나뉘기도 하고 시험에서도 듣기와 독해 영역이 대부분 나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영어는 언어이다. 이 각 네가지 분야가 완전히 따로 존재할 수 있가?

언어의 본질

언어의 본질로 들어가야한다. 언어가 왜 생겼을까? 뭔가 마음 속에 혹은 머릿속에 전달 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을 상대방도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같은 규칙을 사용해서 사물의 이름을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기로 정하고, 느낌, 행위, 수 같은 개념 등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져갔다. 심지어 이런 정해진 틀은 자의적이기 때문에 문화권마다 다르고, 시대와 역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새로 생성되고 또 사라진다. 스펙, 완소 등의 표현은 내가 어릴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표현이지만 이제는 널리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본질적 언어로서의 영어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고 과학을 배우고 사회를 배운다. 그런 '과목'중에 하나로 영어가 있다. 그래서 영어가 '공부'해야 할 '과목'으로 느낀다.
그러나 이들 과목과 영어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영어는 지식으로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서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이다.
"언어"의 본질은 뇌에 새기거나 이해해서 원리를 파악하는 지식이 아니다.
그 이전에 존재하는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 틀 자체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언어로 사고하고 또 사고한 것을 말하고 때로는 글로 쓰기도 한다. 영어는 영어권 사람들의 사고하는 틀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한국어의 그것과 다른데 그것은 그 차이와 영어만의 고유의 체계를 이해는데서도 출발할 수 있다.
결국 진정으로 "영어"를 한다는 것은 문법공부, 독해집 풀이, 듣기 문제 풀이, 말하기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사고하는 틀을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을 말로 옮기면 말하기가 되고 글로 옮기면 글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 사고의 틀을 이해하고 있어서 다른 이가 하는 말이나 글도 알아들을 수 있다.

영어 습득 순서의 중요성

갖난아기가 언어를 익히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갖난아기에게 문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혹은 읽기를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 이전에 갖난아기는 단어를 하나씩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훨씬 중요한 단계를 거친다.
갖난아기가 첫 단어를 발화하기 훨씬 이전에 일어나는 일은, 갖난아기는 "네이티브 언어 체계"속에 "노출"된다. 끊임없는 양질의(네이티브의) 언어가 재생되는 것을 굉장히 많은 시간 "듣는"것이다. 이것은 갖난아기가 노출된 환경에 따라 방언이 될 수도 있고 특정 계층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방언이든 특청 계층의 언어든 그것이 그 갖난아기가 놓인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양질의(네이티브의) 언어라는 점이다.
언어 습득의 올바른 순서는 갖난아기의 그것처럼 듣기 - 말하기 - 읽기 - 쓰기가 된다.
말하기, 읽기, 쓰기는 같이 병행될 수 있다. 그렇지만 "듣기"는 선행되어야하고 사실은 이 "듣기"가 말하기, 읽기, 쓰기를 아우를 수도 있다. 들린 것을 글로 쓰면 쓰기가 되고 그걸 읽으면 읽기가 되며 따라 말하면 말하기 훈련이 되는 것이다. 영어는 사고 체계 자체이자 언어이기 때문에 사실은 문법, 독해, 쓰기가 각각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이는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함께하는 커다란 체계 자체인 것이다.

네이티브 듣기 환경 노출의 중요성

언어가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이용되는 수단은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 발화는 많은 정보를 함께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성량, 음의 높낮이, 발음, 조음방식, 조음할때 쓰는 발음 기관과 호흡법, 인토네이션, 문장의 강조점, 강하게 말하는 단어와 약하게 말하는 단어, 리듬 등이다.
그리고 이 총체적인 것들이 네이티브의 그 방식과 유사할 때 우리는 그 언어가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네이티브의 그것과 다르다면 우리는 그 언어를 "내용은 이해하겠지만 왠지 알아듣기 힘들다."라거나 "왠지 어색하다."고 느낀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생성하고 말한다고 해서 그 문장이 "살아있는 언어"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뇌에서, 혹은 온몸에서 감각적으로 발화가 이루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캐치하고 그 해석을 통해서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목소리의 톤, 그속에 담긴 감정 등까지도 포괄한다. 그런데 우리가 머릿속으로 문법을 생각하느라 바쁜 상태에서 발화를 한다면 그 말화에 감정이 담길 가능성은 얼마나 커질까? 그것이 "살아있는 언어"가 될 확률은 얼마나될까?
모든 언어권의 언어는 그 언어의 네이티브가 발화하는 규칙이 있다. 모든 언어는 방언이 있고 표준어라고 정해놓은 발화 방식도 있다.
그래서 네이티브의 발화에 노출되는 듣기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직접적인 발화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라디오 등의 매체의 발화도 포함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이 발화의 접근성이 매우 쉬워졌다. 어색한 어학 듣기 녹음 테이프의 대화문이 아닌 살아있는 그 외국어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쉽게는 영화나 여러 장르의 프로그램부터, 미드 영어, 유투브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하다.
이렇게 네이티브 발화 환경을 접하는 중요성은 앞서 말했듯이 일상적인 언어 발화가, 글자체에는 담지 못하는 수많은 정보들을 함축하고 있고 그 정보들이 그 언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한번 이 정보들이 습득되면 우리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글 속에서도 그 정보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가 가능하지는 않다. 글줄에 그 단어의 발음이나 높낮이가 직접적으로 모두 들어있지는 않다. 글은 그런 정보들의 극히 일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발음이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담겨 있다하더라도 그 문장의 총체적인 인토네이션이나 발음이 줄글에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설사 표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줄글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그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줄글을 쓰고 그것을 발음하는 방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발화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발화를 줄글로 옮기는 규칙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도 발화로서의 한국어는 있었고 이는 한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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