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형 블로그

이 블로그는 홈페이지향 블로그이다.

나는 10년 이상 웹계를 떠나 있었다.
더 정확하게 쓰자면 웹상에 어떤 글도 잘 올리지 않고 지냈다. 단발성 덧글 질문 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발행하는 글은 웹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커다란 은거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생활패턴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거나 변화를 시도하던 때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내 삶의 추구와 태도의 방향성의 반영이었다.

10년의 함께함

그러나 그 전의 10년 동안 나는 웹페이지가 있었다. 홈페이지로 시작한 웹페이지는 기간동안 여러가지 변화들이 있었지만 어떤 작은 형태로든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 웹페이지는 삶의 커다란 한 축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온라인이라는 공간 속에서 내가 가진 공간이었고 마치 버자이너 울프의 "자기만의 방"처럼 독립된 공간이기도 했다. 사실 버자이너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온라인이라는 오픈된 공간에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망망대해 넓은 공간 속에 표류한 하나의 작은 섬인 홈페이지는 하나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이라는 특성상 많은 행간을 생략해서 표현하더라도 그 하나의 독립된 공간은 내가 편안하게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에게 맞춰진 너무나 편안한 내 안방같은 공간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서, 그 한참 후에야 유행한 네이버 블로그도, 사이월드도,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그다지 정을 붙이지 못했다. 유행처럼 휩쓸려서 페이지를 만들어 보았다가도 내가 집짓기부터 해서 자유롭게 내 입맛에 맞게 지은 내 공간에의 편안함에 익숙해져있던 나는 디자인적 제약도 심하고 사람이 붐비는 그런 다른 공간들이 썩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 내 공간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서비스들이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수도 있는데 내 웹상의 둥지는 언제나 내 웹페이지였다.

다시 시작하는 웹페이지, 홈페이지형 블로그

어느 날 이유도 없이 자연스럽게 웹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며칠동안의 감상은, 우선 내가 "글쓰기"자체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웹페이지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 자체가 내 삶의 축 중에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웹상에서 은거하던 10년간도 개인적으로는 많은 글을 썼다. 아마 글쓰기 표현의 제약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웹이 아닌 공간에 글을 썼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동안의 경험에서 느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웹에 적는 글과 혼자 적는 글이 같은 주제라도 꽤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주제들이 머릿 속에 있지만 그런 주제들을 펼친다기보다 그때그때 이런 저런 글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이 공간이 하나의 정형화된 주제를 가지고 탐색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와 함께 흘러가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때 나에게 떠오르는 이야기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한 글들이 나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은 혼자 쓸때와는 꽤 다른데, 예를 들어 "아 새 폰에서 이 기능이 안되네. 귀찮다."정도로 끝날 한줄짜리 이야기가 앞뒤에 살이 붙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붙는다. 마치 현미경을 대듯 좀더 그 한줄의 설명을 확장한다.

또 하나 느끼는 점은 초반의 웹페이지는 이러나 저러나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내가 표현하는 '자리잡음'은 가장 우선적으로 "내가 느끼기에 편안한 공간"이 되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거기엔 디자인 적인 요소들도 포함되어있고, 손이 가게 되는 부분이다.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일에는 웹페이지 자체가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보조적인 일들, 웹마스터 도구 등록이나 서치 어드바이저 등록, 사이트맵 제출 등의 부수적일 일들도 물론 포함된다.
나는 지금까지 구글이 가진 서치엔진 능력이만 감탄해 왔었는데, 막상 그건 구글이 알아서 웹상에 떠다니는 모든 정보를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들을 구글이 알아들을 수 있게 등록하고 관리하는 그 뒤의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 역시 포함된 결과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웹페이지라는 공간

나는 아직도 이곳을 티스토리나 블로그가 아니라 웹페이지라고 부른다. 홈페이지에서 시작되었던 오랜 영향이다. 아마 스스로 내가 하는 것이 "블로그"라는 틀하고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티스토리나 블로그의 포맷을 빌렸을 뿐, 그 속에서 하는 역할과 일어나는 일은 홈페이지때부터 이어진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만의 방"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티스토리나 어떤 형태를 빌린 서비스들은 언제든지 이사갈 수 있고 나중에는 워드프레스나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될 수도 있다. 이어지는 것은 포맷이나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이 공간 자체이다.

정보지와 집

사실 블로그라는 틀에 꽤 어울리는 것은 정보성 글이다. 나조차도 블로그 검색으로 찾는 것은 그때 내가 필요한 정보들이다.
그래서 정보성 색채가 옅은 편인 이 곳이 블로그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정보지나 잡지라기 보다는 집에 가깝다.
"ㅇㅇ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내가 해본 ㅇㅇ"이 쓰여지는 곳에 더 가깝기도 하다.
사람을 들어낸 how가 아니라 who가 같이 들어간 공간인 것이다.
SNS나 이웃맺기 같은 관계성 중심과도 다르다. 관계는 존재하지만 그 관계가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그 이전에 이 곳이 "집"이기 때문이다.
"집"에는 손님이, 방문객이 방문하지만, 방문객이 없다고 "집"이 역할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집은 그 무엇보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자체의 생활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웹페이지라는 특성상 폐쇄된 집이 아니라 누구나 방문 할 수 있는 오픈 하우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곳은 소통 수단 이전에, 정보 제공 이전에 자신에게 제공하는 공간의 성격이 더 강하다.

하나의 의의

웹페이지가 현재 나에게 가지는 하나의 의의는,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도화지를 준다는 점이다.
그것도 내 개인 노트와는 다른 글이 쓰여지는 노트이다.
이런 글들의 모임도 재미있는 개인적인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 당시 했던 고민들, 영향을 끼쳤던 것들의 흔적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읽을 가능성이 있는 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쓰는 글 역시 좀더 정제된다. 나만의 독자에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라는 다른 거울을 가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분명 아주 크게든 작게든 내가 아닌 독자까지를 염두에 둔 글은 다르다. 그 고려가 글 속에 어떤 형태로든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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