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연주, 무형과 순간의 경험
- 단상
- 2021. 3. 13.
음악 연주
최근에 음악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악기를 하나 시작해서인데 선생님 없이 혼자 연습하고 있지만 음악이 주는 것이 참 크다.
클래식 음악들과 작곡가들도 연주를 통해서 새롭게 만나가고 있다.
이렇게 음악을 만나가면서 느끼는 부분은 이전에는 음악이 나에게 "레코딩"이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음원이나 백뮤직이었다. 음악은 '듣는'것이었고 그 음악을 듣는 방식도 음이나 노래 가사를 듣는 행위였다.
그리고 악기를 하나 시작하면서 음악이라는 전체가 달라졌다. 피아노나 기타 같은 화음 악기가 아니라 선율을 연주하는 멜로디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한번에 한 음만을 연주하는 것이 단순할거라고 어림짐작했었는데, 그저 그 단순한 선율을 연주하면서 얻는 것, 그 음악이 와닿고 음악에서 느끼는 것이 다르다.
곡이랑 가지는 관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냥 레코딩, 청자로 들을 때와 그 음악을 연주할 때의 음악과의 친밀도가 참 다르다. 그 음악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그 뒤에 있는 작곡가들을 만나게된다. 각기 다른 음악 속에서 각기 다른 작곡가들의 성향과 성격들을 읽어내게된다.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곡들을 세상에 만들었는지 다시금 감탄하게 되기도한다. 몇백년된 클래식 음악을 지금도 반복해서 계속 연주하는 이유를 알 만 같다. 그 음악을 계속 이어가는 과정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스로 찾아서는 거의 안듣던 클래식 음악들을 하나씩 찾아듣고 오케스트라 영상들도 보기 시작했는데, 악기 하나하나가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앙상블, 하모니, 지휘자의 손짓과 해석, 다 함께 그 곡을 만들어나가는 그 공기가 전해진다.
하나하나의 음악들을 남겨준 작곡가들이 인류의 큰 유산이라는 것을 알겠다. 많은 작곡가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힘겹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들이 참 많고 그 음악들이 몇세대를 걸치고 몇백년을 넘어서 아직도 닿고 있다는 숭고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에 대한 어떤 성격의 단편의 에피소드 이상으로 음악 속에 큰 깊이가 담겨 있다.
음악이라는 자체의 기적.
소리, 음은 우리가 현재 소통하는 가장 일차적인 도구이다. 우리의 말이 이 소리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이 에너지, 진동, 파장인데 이것을 우리 오감이 시각으로 번역하는가 소리로 번역하는가 촉각으로 번역하는가 등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파동을 즉각적이고 일차적으로 전달하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의 진동의 높낮이를 찾고, 그 높낮이와 길이의 연결로 풍부한 어떤 것을 생산해내는 음악은, 기적같은 산물이다. 거기에 더불어 어떤 파동이 어떤 파동과 어울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거기에 어떤 것들을 불러일으키게 되는지.
음악은 그 진동, 파동으로 이루어져서 직접적으로 그 파동이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즉각적인 느낌하고 연관이 깊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높이, 같은 진동의 음이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것 만은 아니다. 실제의 음악은 연주가가 있고, 그 연주가의 무엇이 악기를 통해서 그 파동에 실리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든 악기 연주든 단순히 음을 연주하는 것과 그 안에 뭔가가 실려 있을 때 우리는 꽤 즉각적으로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실린 무언가는 직접적으로 온몸 깊숙히 와 닿는다. 그것은 언어로 발화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되거나 하는 차원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직접적인 소통, 직접적인 울림이다.
옛 사람들이 문자가 아니라, 음의 높낮이를, 강하고 여림을, 음의 길이를 적는 법을 생각해내었고 그들은 그 음악의 언어로 기록을 했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짜여지고 다듬어진 작품으로서 기록했다.
우리는 실제로 그 작곡가 시대에 이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었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종이에 적힌 음표들이 그 흔적을 전달해주고 있다.
위대한 작가의 소설이 있다고 하자. 그 소설을 B가 완벽하게 필사한다고 해서 B를 위대한 소설가로 보지는 않는다. 이를 비틀어 다뤘던 보르헤스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작품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음악"은 다르다. 악보에 적혀 있는 기호들은 "음악"이 아니다. 그 기호들을 어떤 연주가가 연주할 때, 혹은 어떤 가수가 노래할때, 그 순간만이 그 악보에 적힌 기호들은 "음악"이 된다. 끊임없이 그 악보를 익히고 연주하고 이어가야만 그 "음악"도 살아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화가의 어떤 작품을 흉내낸 모작이라고 이야기되는 미술 영역과도 다르다.
연주가가 연주하고 가수가 노래하는 그 순간에만 오롯히 존재할 수 있는 무형의 예술. 실제로는 진동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형태조차 없는 예술이 음악이다.
지금은 많은 작곡가들이 살아있던 시기와는 달리, 이 소리도 기록의 형태로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기술은 음악을 "재생"한다. 새삼 "재생"이라는 말이 다르게 와닿는데, 이 재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재생"된 음악의 홍수 속에서 음악을 영화나 거리의 혹은 플레이어의 백그라운드로 여기며 살면서 진짜 "생"인 음악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다. 영어의 'Live'뮤직이라는 말이 어째서 그 생을 어휘 속에 담고 있는지가 새삼스럽다.
그리고 진짜 'Live'는 'Live'공연장에 갔을 때가 아니라 내가 그 음악을 연주할 때 일어난다. 내가 그 한음, 한음, 그 진동을 생산해내고 있는 주체가 되어 그 음악을 살아있게 라는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백뮤직처럼 음악을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더 깊고 친밀하고 농후하게 그 음악을 만나게 해준다.
단조로울 것 같았던 선율 악기가 그래서 단음을 연주하면서도 음악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많은 음악 안에서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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