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가 남긴 물건/레이지 보이 리클라이너, 그리고 곤도 마리에, 책상배치

레이지보이 리클라이너를 적는 순간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로 칭할 수 있나 자문해본다.
이 거대한 쇼파의자는 흔히 "미니멀리스트"하면 떠올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정확히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2017년에 미니멀리즘 관련 책을 우연히 접했을 때, "아무 것도 없는 방"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진 속의 그 방이 가지는 정갈한 '선(zen)'적인 느낌이 많이 좋았고, 그 이후 수많은 미니멀리스트의 책들을 읽으며 당시에 이미 진행중이었던 다운 사이징에 다른 방향성의 박차를 가했다. 이전에 진행하던 다운사이징은 "곤마리"에 영감을 얻어서 "좋아하는 것들, 설레는 것들만 곁에 두는" 방향성이었다. 나는 곤도 마리에의 책은 2011년 경쯤 읽었었는데, 곤도 마리에가 지금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큰 영감을 주었었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로만 둘러싸인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버리기 힘든 병'을 가지고 있어서 받은 물건, 어디선가 생긴 물건들까지 잡다하게 쌓아두고 있던 편이었는데, 그 당시 곤도 마리에와의 만남은 물건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나는 그때부터 내 소유물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쌓아갔다. 그리고 그 관계는 유기적으로 계속 변화하는 중이다. 관계를 맺는 나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살아 숨쉬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미니멀리스트"로서의 길에 "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이만큼 다 물건을 비워내고 이제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을 남겼어! 나는 미니멀리스트야! 이제 더이상 정리하지 않아도 딱 필요한 물건만 갖췄으니 이제 끝이야!"하는 것이 미니멀리스트의 종착점이 아니라 사실 미니멀리스트란 어떤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 물건과 관계하는 방식, 나아가서 무형물과 관계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 등을 총괄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물건의 적고 많음만이 미니멀리스트를 정의한다기보다는 왜, 그런 적은 물건의 삶을 사는 지에 대한 그 안의 여정 자체야말로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한다.

곤도 마리에의 "설레나요?"라는 질문과 더불은 하나의 "남기는" 물건 선택 방식은 그 "어떤 물건을 남기는가"에 대한 하나의 지표이고, 이는 머리나, 쓸모, 혹은 세간의 유행, 물건의 가격,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을 법한 중요도, 괜히 부러운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브랜드 등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방식이라서 탁월하다.
곤도 마리에는 그 질문을 할 때 꼭 신체로 그 물건을 "만져" 볼 것을 권하는데, 사실 몸에 저장된 무의식은 의식이나 생각, 사고가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응은 훨씬 생생하고, 즉각적이며, 솔직하고, 가슴으로 와 닿는다.
200만원짜리 명품 백이 내 앞에 있다고 하자. 이는 시장 가치로 충분히 이미 가치가 있다고 공인되어 나온 제품이다. 이 제품을 들면 혹자인 누군가는 '와'하는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 브랜드의 값만큼 만듦새도 소재도 훌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백이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아니라거나 크기가 '나'에게는 불편하다거나, 무겁다거나, 나는 비건 오가닉 자연소재 제품을 선호하는데 이 제품은 소가죽으로 된 제품이라거나 하면, 이 상품은 나에게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 200만원의 시장 가치 이상의 어떤 기준들이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치 역시 이렇게 내가 글로 표현했을만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될 지도 있지만, 그보다 "왠지 손이 간다", "사용했을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어떤 지표들은 그 뒤에 놓인 뚜렷한 이유를 미지수로 남긴채 존재한다.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머리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것이고. 그것은 "어떻게 느껴야지."하고 생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하는,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들도 그렇게 일정한 파동을 가지고 있고 그 파동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리고 곤도 마리에의 "손에 물건를 잡고" "설렘"을 측정하는 방식은 그렇게 마음을 측정하는 한 지표를 알려줄 수 있다.
이것은 나 자신도 잘 모르고 있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의 꾸준한 대화 과정이며 또 그 마음을 "들어주고" "알아주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전에는 이정도까지 곤도 마리에의 방식에 대해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에 그려지는 그 '설레는 것만 남은 방'의 풍경은 저절로 미소를 띄게 했기 때문에, 내 다운 사이징의 당시 방향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2017년,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읽고서 본 빈방의 이미지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 정갈하고 경건해보이기까지 하는 방의 풍경이 마음속 어딘가를 강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다운 사이징의 방향성은 "설레는 물건만 남기기"에서 "정말로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주위에 두기, 가능한 적게 가지기"라는 곤도 마리에를 넘어선 미니멀리스트의 방향성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그 방향성으로 물건을 정리하다가, 이제는 그 방향성을 멈추고 재정비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새 내가 맹목적인 미니멀리스트, 적게 가지기의 목표를 완수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이는 방향성의 와전이다.

지금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트렁크 2개까지 물건을 줄이고자 했던)였을 때보다 마음에 훨씬 여유로워졌는데, 현재는 물건의 가짓수나 크기, 무게 등등에 연연하지않고 (자동차 한대로 언제든 이사할 수 있는 삶을 꿈꿨다) 현재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내 주변에 두고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이는 내 삶의 방식이 변화할 때마다 바뀔 수 있고 변할 수 있다. 결국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가, 혹은 살고 싶은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곤도 마리에의 "설렘"이라는 지표는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느낄 가치를, "나"에게는 쓸모와 효용 가치가 달라지는 물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미니멀리스트가 남긴 것"이라는 글들이 어떤 의미가 될 지는 모르겠는데, 이것들은 "이 제품를 써봤더니 좋더라, 꼭 사세요."같은 홍보 글이나 제품 리뷰와는 어쩌면 조금은 성격을 달리한다. 나에게 그 물건이 주고 있는 편의성과 그 물건을 남김으로서 그 물건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 자신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아울러 담겨 있는 글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효용을 주는 이 물건들이 누군가에도 또 유용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맞는 다른 물건을 비슷한 자신과의 만남과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 찾아갈 수도 있다.

레이지 보이 리클라이너, 코로나 시대의 친구

 

내가 그렸던 미니멀리스트로서 강하게 가졌던 이미지인 "아무것도 없는 방"을 떠올리면 이 리클라이너만큼 "미니멀리스트"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다.
나는 실제로 1년 정도 트렁크+백팩에 든 짐 만으로 살아본 적도 있고, 6개월 이상 텐트에서 생활해 본적도 있다. 그리고 그 삶은 나름대로 매력적이고 주는 것이 많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해보고 싶은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 생활을 잠시 접었는데, 그 이유 하나가 코로나바이러스 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밖에서 하던 활동들이 온라인으로 많이 바뀌었다.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도 늘었고, 삶의 방식도 그에 따라 변화했다.
그리고 이 코로나 시대에 내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레이지보이 리클라이너이다.
이 낡은 리클라이너는 어느날의 구세주가 되었는데 그건 내가 가끔 하루 6시간을 앉아서 화상 채팅을 연일로 해야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오프라인으로 행해지던 일이다.
그리고 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의 변화는 큰 변화를 주었는데, 화면에 집중하며 오래 앉았는 경험은 쉬운 경험이 아니었다.

며칠 정도 이런저런 의자 등에서 시도했지만 어느새 허리도 아파오고 오래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레이지보이 리클라이너를 화상 채팅이 필요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스스로 느끼는 그 쾌적함의 변화가 매우 컸다.

목 뒤까지 받혀주는 의자라는 것도 큰 장점일 것이다.
나는 현재는 컴퓨터 작업도 레이지보이에 앉아서 하고 있는데 이전에 소개한 마우스와 키보드를 상판에 놓고 무릎에 얹어서 사용하고 있다.
손목도, 팔도 편하다.


그리고 책상 배치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요즘 수험생이나 공부 방법을 위한 책상 배치에 관한 정보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그 중에는 풍수에 대한 것도 있고 여러가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내가 주목한 배치법은 "의자를 벽을 기대 배치하고 책상을 그 앞에 두기"이다. 등 뒤에 공간을 없애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는 배치법이었는데 실제로 현재 레이지보이는 벽면을 기대고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간이 탁자인 서랍장과 모니터가 놓여 있다.(키보드와 마우스를 무릎에 올려 놓고 쓰기 때문에 넓은 책상이 필요하지 않고 모니터만 올라가면 된다.)
방 전체를 의자에 앉아서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열린 배치인데 더불어 등 뒤에는 공간이 없어서 안정감을 준다.
벽면을 마주보고 책상 앞에 앉는 배치보다 오래 앉아서 작업하기에 꽤 기분이 좋은 배치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외출이 더 잦아진다면 레이지보이에 앉는 시간도 줄어들겠지만, 현재 강제로 장시간 한자리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때때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물건이다.
덩치도, 크기도, 무게도 미니멀리즘스럽지는 않지만 미니멀리스트로서 요즘 방에 둘 'only one'의자를 골라야 한다면 레이지보이 의자를 고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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