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애니&만화 / 피그마리오 ピグマリオ(MBC 1994), 신화적인 이야기

 


피그마리오는 와다 신지 원작의 애니화도 된 작품이고 한국에는 1994년 방영되었다.
“가만히 눈 감으면 떠오르는 모습 어머니, 오늘밤 꿈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 조용히 불러보면 들려오는 목소리 어머니, 하늘저너머 어딘 가에 계실거야.”로 시작되는 노래도 꽤 서정적이다.

서양 신화를 모티프로 한 개성있는 등장인물과 서사가 재미있어서 즐거 봤던 작품인데, 한창 궁금한 중간에 이야기가 끝나서 아쉬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방영 중지 그런 것이 아니라 애니화가 연재분을 따라잡아서 멈췄기때문이다.

너무나도 뒷 이야기가 궁금했던 나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JLTP2 급을 따자마자(1급도 따기 전에) 피그마리오 후속권 원서를 구해서 사전을 찾아가며 읽기 시작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 애장판 전 12권 중에서 11-12권의 분량이 애니화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 두꺼운 판본으로 다시 나온 애장판을 구입했었고 나중에 일본에 갔을때 북오프에서 애장판 전질을 다 샀을 정도로 애착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반의 코믹스판 27권을 일본어 원서 전권 초판본으로 구하기도 했었다. 그 정도로 개인적인 추억이 많은 작품이다.
이들 책은 미니멀리스트의 여정과 더불어 처분했지만...

애니를 소개할 때는 되도록 스포일러가 되지 않은 감상 포인트 정도를 소개해 온 편인데, 이 작품은 아는 이도 좀더 적은 마이너한 작품이고 또 나처럼 뒷 이야기가 궁금할 사람(그러나 일본어로 원서를 읽지까지는 않을 사람)도 있을 듯 해서 조금 더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소개할까 한다.
그래서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읽을 때 주의를 요한다.


동화와 신화같은 신비

이야기의 주된 골자는 요정과 인간의 혼혈 아들인 쿠르트 왕자(마치 혼혈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세고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녔으며 신들의 사랑을 받는다)가 메두사에 의해 돌이 되어버린 엄마 가라티아를 원래대로 돌이키기 위해 메두사가 사는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험기이자 영웅담이다. 인간의 세계가 시작되기 전 신들과 인간의 세계가 공존하는 시대의 이야기이자 창세기이기도 하다.

여행 과정에서 조력자로 엄마의 자매이자 쿠르트의 이모인 요정 올리에(그러나 쿠르트를 사랑한다)와 점술사 수정공주 올리에(역시 쿠르트와 로맨스 관계로 발전한다), 용족인 레온(어린 용으로 도마뱀처럼 생겻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거대한 눈알 모양의 몬스터 등을 만나고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그 중에서 적이지만 엄마 가라티아에게 한눈에 반해서 쿠르트의 숨은 조력자가 되기도 하는 메두사의 오빠 아스나스라던지, 인간이지만 메두사와 인연이 되어 메두사의 아들이 된 마리우스 등의 인물도 있다.

쿠르트가 가진 무기는 대지의 여신 율리아나로부터 받은 “대지의 검”으로 실제 크기는 빌딩처럼 거대하지만 자유 자재로 크기가 변해서 평소에는 단검 형태로 가지고 다닌다. 애니에서는 “대지의 검이여 쿠르트가 명한다.”같은 주문과 함께 대지의 검이 형태를 바꾸는 데 이 영창도 멋있다.

한 에피소드 에피소드가 진지하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또 들르는 각 여행지가 가진 사연이 남다르다. 쿠르트는 영웅 서사처럼 여행중에 갖은 시련을 겪으며 인물들과 인연을 쌓고 성장해간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나 세계관 자체가 굉장히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세계이고 등장인물들이 적을 포함해서 매력적인 때도 많아서 굉장히 생동감 있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뻔한 클리셰로 흘러가기 보다는 예상을 뒤집는 경우가 많아서 신선하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하다.

예상보다 무섭고 무거운 이야기

위의 이야기를 보고 신화적인 아름다운 세계나 동화같은 얘기를 상상하면 조금, 많이, 곤란하다. 피그마리오는 생각 이상으로 무섭고 진지하고 무거우며 잔인한 서사가 많기 때문이다.
이 서사가 뭐랄까 단순히 그로테스크하거나 폭력적인 현대 몇몇 애니와는 좀 질감이 다른 느낌인데, 그로테스크하려고 그로테스크한게 아니라, 서사 자체가 무겁고, 여과가 없다.

나는 사실 저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으로 MBC방영작을 보았었고, 피그마리오는 나에게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었는데, 사실 그것은 MBC의 무참한 가위질 덕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떤 면에서는 어린 동심을 지켜준 면이 있으니 나쁘다고만은 못하겠다... 내가 피그마리오 무삭제판을 본 것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 이후이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원작 뒷 이야기를 구입해서 읽기 전에, 나는 우연히 한국에 비디오로 발매된 피그마리오 전편을 구해서 보게 되었는데, 방영당시 중간 중간 놓친 화들이 있고 너무 어린 시절 봐서 그 궁금함으로 다시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이 무삭제 비디오판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당시 더 어린 동생과 같이 봤는데 동생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정도였다(혼자 봤으면 더 무서웠을 듯 해서).

우선 MBC판에서 쿠르트 일행이 타고 다니던 하얀 공 모양의 물체가 있었는데(민들레 씨앗처럼 보이기도 했던) 무삭제판을 보니, 그 하얀 둥근 물체는 하얀 둥근 물체가 아니라, 쿠르트 일행의 일원인, 술을 좋아하는 눈알 모양의 몬스터였다. 등장 모습은 꽤 끔찍하고 눈알을 타고 다니는 비주얼이 충격적일 수 있다. 나중에는 귀여워서 정들긴 하는데... 하얀 물체가 눈알이었다는게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서사가 “꿈과 희망도 없는” 서사로 갈 때가 많다.
보통 특히 많은 애니 서사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을 하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한 등장 인물들이 나오면 주인공이 등장해서 그 등장인물을 도와주거나 사건을 해결해주는 서사가 많다. 그러나, 이 피그마리오는 사실 아주 많은 경우에 이렇게 서사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현실에 부딪혀가는 것 같은 답답함과 찜찜함이 있다. 어쩌면 요즘처럼 환생까지 해서 사건을 다 꿰뚫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하는 ‘사이다’전개의 서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피그마리오를 보면서 거품을 물게 될 지도 모른다.

피그마리오 꿈도 희망도 없는 서사의 예들

(스포일러 주의)
예를 들어, 첫 여행지는 산 부족과 바다 부족이 싸우는 곳이었는데 의례 이런 이야기에서 그렇듯이 이 부족에는 부족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커플이 있다. 그러나 의례 해피엔딩일 것만 같은 이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난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꽤 허망하다.
그보다 더 끔찍하고 정말 혀를 내눌렀던 왕국 이야기는, 자매가 공주로 있는 성에서 적 몬스터가 언니를 죽이고 얼굴 가죽을 벗겨서(매우 리얼하다) 입고 언니 행세를 한다. 그러며 왕국 자체가 불행으로 치닫는 모습이 굉장히 여과없이 나온다. 행복해질 결말을 기대하며 보고 있으면 그 끝없는 나락을 느낄 수 있다.
한 간신이 메두사에게 왕국을 팔아먹고 대가로 왕이 되기로했었는데, 나중에는 메두사가 그 간신을 도마뱀으로 만들어 “널 도마뱀 왕국의 왕으로 만들었다.”하기도 한다.
정말 더더욱 무섭고 힘이 빠지고 보기 힘들었던 서사는, 착하고 따뜻한 전형적인 주인공 성격의 소년인 쿠르트는 어느 건설지의 노예들을 돕기 위해 거기서 같이 일하게 되는데, 보통 다른 이야기나 만화의 서사 같으면 주변 인물들이 착한 쿠르트에게 감화받거나 감동하고 고마워할 법도 한데, 여기서는 저 아이가 힘들어하는 사람을 못본채 하지 못하고 그 사람 몫까지 일한다는 것을 깨달은 어른 일꾼들이 죄다 꾀병을 부려서 쿠르트가 가혹한 노동 과다에 몰려서 쓰러질 지경이 된다. 이 서사에서 무서웠던 것은 쿠르트를 힘들게 한게 적 몬스터가 아니라 쿠르트가 돕고자 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만화 등의 서사에서 보는 주인공 친화적이거나 사건이 해결되거나 종결되는 과정이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 때가 많아서 면역 없이 보다간 멘탈이 탈탈 털릴 수도 있다. 어린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좀 망설여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좀더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들도 같이 있긴 하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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