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실력지상주의 교실에 라노벨 애니, 넷플릭스 애니, 라프텔 애니 추천
- 애니
- 2021. 9. 23.
어서오세요 실력지상주의 교실에 라노벨을 원작으로 한 12화짜리 애니메이션은 라프텔 애니, 넷플릭스 애니에서 서비스 하고 있다.
애니화
요즘 많은 종류의, 라노벨을 애니화한 쪽이다.
이런 경우에 흔히 그런 경우가 많듯이 남성향적이고 서비스 컷도 많아 불쾌할 수도 있다. 다만 메인 스토리 줄기가 하렘은 아니다. 좋아하는 작품군에 들 정도로 취향인 작품은 아니고, 그냥 한번정도 무난하게 본 작품이다.
두뇌싸움
특이한 학교 시스템을 만나고, 그 학교 시스템 내에서 살아남는 두뇌싸움에 가까운 면이 있다. 이런 두뇌싸움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부각되면서도 훨씬 따뜻하고 건전한 작품으로는 “두개의 스피카” 같은 작품도 있다. 훨씬 정서적이고 감정도 풍부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시스템화 된 학교가 얼칫 ‘암살교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암살교실에 등장하는 학교도 현실의 부조리함늘 보여준다는 명목 하에 대놓고차별이 존재하던 학교였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학교는 심지어 돈처럼 환산되는 포인트로 각각의 실적을 환산하며, 그것이 반 별로, 그리고 개인 별로 주어진다. 그러나 암살교실하고 가장 큰 차이점은 진정한 스승의 부재이다. 스승이 부재한 암살교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스승은 시스템의 일부에 가까우며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반 별 포인트를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협력이나 협동도 유지되지만 그것이 다른 애니들에 많이 부각되는 따뜻한 우정이나 서로를 위한 마음, 혹은 유대와 연대는 아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은 매우 개인적인 이유로 움직이며, 자신이 고립되는 것에 상처를 받거나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도 않고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고립시키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적어도 애니화 된 앞부분은 처음부터 외로움이나 고뇌에서 출발한 트라우마 극복 과정등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는 굉장히 드라이한 편이고,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 보다는 의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있다. 모두가 자신의 패를 다 드러내지 않으며 그래서 상대의 진짜 모습을 그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애니에 와서 더 무기력하게 그려졌다고 하는데 그러한 방관적인 관찰자적인 시선이 이 작품에 짙게 깔려있고 일이 터졌을 때 뒤에서 개입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축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면화해서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반의 구심점은 다른 이들을 중심으로 잡혀있고 그것을 관찰하고 뒤에서 자신의 의도로 흘러가도록 조종하는 주인공이 있다.
그래서 따뜻한 우정물이나, 우정! 용기! 사랑!등의 일부 90년대 만화에 많이 활용되던 소재(유치하다고 평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는)를 기대하고 보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물론 은근한 연대나 인연 등은 존재한다.
작품 자체가 외전의 서비스 화 같은 것을 중간에 만들어서 생뚱맞고 개연성도 떨어지고 불쾌할 수도 있다.
모두와 친구 / 모두에게서 고립
이 작품은 모두와 친구가 되려는 인물과 모두와 고립되고자 하는 인물이 극단적으로 나온다.
정서적으로 모두와 친구가 되려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거나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닐 수 있고, 오히려 모두에게서 고립되고자 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는 나을 수도 있다. 인간관계를 어떤 압박이나 의무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주도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 고립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역시 아주 바람직하지는 않다.
모두와 친구는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 긍적적이고 좋은 시도일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모두가 나에게 호의가 있고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자기 과잉이기도 하다. 다른 이의 “나와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그래서 상대의 거리나 바운더리를 무시할 수 있다. 모두에게 고립되고자 하는 인물은 당연히 저 시도를 계속 차단하는데, 보통 관계는 쌍방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런 경우에는 시도하는 쪽도 상대방의 의사를 읽고 어느 정도 거리를 지켜주거나 존중해주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모두와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돼”가 있다면 저 부분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진다. 친구가 되지 못하는 당사자는 물론 계속 차단해야 하는 상대도 힘들다.
그리고 “모두와 친구”라는 것 자체가 기만인게, 친구란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꾸준하게 함께 보낸 시간,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알아가는 시간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고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관계 형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전교생과 친구가 되어야지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전학년 생이 100명이라고 했을 때 일년에 3일 정도씩 그 사람과 교류해야 모두와 비슷한 정도로 교류할 수 있다. 그리고 1년에 3일 교류하는 누군가를 상대가 친구로 느낄지는 의문이다. 그냥 이름을 알고 스쳐 지나갈 때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이를 늘리는 것은 깊이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모두에게서 고립”을 택하는 이가 한둘과 조금 더 교류를 할때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모두와 친구”가 되려는 인물은 처음 등장부터 위험해 보였다.
사회가 정한 룰
이 작품은 사회가 정한 룰,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그 시스템에 수긍하면서 그 안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엘리트주의나 경쟁 사회 혹은 그로 인한 비인도적인 행위 등을 부정하거나 맞서 싸우는 등장인물은 없다. 몇몇 등장인물들의 목표는 더 좋은 평가를 받는 A클라스에 가는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 없는 사람들도 있다. 경쟁과 평가에 의거한 시스템 자체는 개개인의 행복을 불러오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극대화 된 것이 아마도 주인공이 자랐을 것으로 암시되는 시설의 모습에서 나온다. 즉 이 작품은 이런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거나 그곳에 저항하기 보다는 그 시스템 안에 놓인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서 밖에서 그 시스템 자체를 바라보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며 본다면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가질 일이 더 적어진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돈의 원리로 흘러가기 때문에 개개인의 행복에는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바라는 ‘성공’과 개개인이 획득할 수 있는 행복은 다를 수 있는데 이루기 어려운 ‘성공’에 초점을 맞춰서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
미완
원작 소설인 라노벨도 미완인 것 같고 애니는 12화의 1쿨만 나왔고 2기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1쿨 12화 관점에서는 서비스 장면이나 좀 불쾌한 장면이나 연출이 적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고 봤을 때 그냥 한번 정도 볼만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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