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서파큐, TV판, 구극장판 감상
- 애니
- 2021. 9. 6.
에반게리온 서파큐 감상. 이 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인적인 해석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부탁합니다.
이것은 에바가 “이런 작품이다”라는 작품 분석이나 해석이라기 보다 나에게는 에바가 “이런 작품이었다”는 주관적인 해석에 가깝습니다.
캐릭터 디자이너의 혐한 논란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는 작품이지만 적어도 이 신극장판 마지막편은 캐릭터 디자이너와 무관하기도 합니다.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아마존 프라임에 공개되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마지막편을 봤다.
에바는 나의 10대와 20대에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다. 에바 TV판과 에바 구극장판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 마음에 인간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깊어가던 시절에 그러한 감정들을 여과없이 전면에 표현하는 이 작품에 위로를 받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세계”를 꿈꾸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와닿는 두려움의 발로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에 대한 따뜻함이기도 했다.
관계에 서툴고 두려움에 가득찬 인물들의 서툰 한발과 시도들. 그런 것들을 작품 속에서 읽어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마음 속에 크게 남았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연출이나 어떤 해석 같은 것 보다도 이 커다란 에바라는 틀과 세계를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더 좋아했던 것은 그 “희망”의 메시지를 더 터뜨리지 않고 더 직접적으로 담은 에바의 전작, 나디아였지만 사실 에바의 그 무시무시한 여과없는 전면에 드러낸 두려움과 무서운 소망을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엔드오브에반게리온, 구 글장판 마지막편은 나에게는 그 당시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인간관계가 두려운 나머지 “그러니까 다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를 직접적으로 대사로 읊으며 포스터에 적는 그 에반게리온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 직접적인 여과 없는 두려움의 표현, 대사는 “진심을, 그대에게”라는 엔드오브에반게리온의 부제와 함께 크게 남았다.
그러나 결단코 에바의 메시지가 그렇게 세상이 다 끝나버리길 바라는 파괴적인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서 그 인류 전체를 멸망시켜버릴 것 같은 그 두려움에 끝에서 결국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정말로 좋아했던 엔딩은 “엔드오브에반게리온”이 아니라 “축하해”로 끝나는 티비판 엔딩이었고 “나는 여기에 있어도 괜찮아!”를 외치는 신지에게 함께 박수를 쳐주거나 박수를 받고 싶은 그런 마음이 가득했다. 사실 이 티비판은 엔드오브에반게리온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엔드오브에반게리온 속에서 신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전투 장면이나 설정이나 이런저런 것들로 에바를 좋아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모두 포함해서 에바라고도 생각하지만 나에게 이 작품이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이 작품이 “사람의 마음”에 대해, 그것도 전면으로 밝히거나 말하기 불편하고 힘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이 작품을 그래서 좀더 심오한?어떤 삶의 어떤 정답이나 진실이 담긴 어떤 작품 처럼 대하거나 보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좀더 미숙한 한 개인의 상처의 표현이자 치유의 의지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작품 자체와 함께 한 시간이 긴 만큼 추억 자체가 많은 작품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장장 10년이 넘게 이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반게리온 작품이 끝난 후 등장한 “에반게리온 2”게임은 에바의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한번 더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세이브를 해도 도저히 파악이 불가능한 안노 AI에 한숨를 쉬고 어떤 경로로 열심히 가도 몇몇 루트를 제외하고는 결국은 서드 임펙트, 즉 인류가 모두 원시의 바다로 돌아가 하나가 되는 종말을 맞이하는 엔딩을 보면서 허무함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서드 임펙트를 나중에 중단하기도 하지만 아예 서드 임펙트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루트 엔딩이 드물었다. 신지와 겐도의 화해 엔딩 등도 있긴 했지만...
그 외에도 지금은 작가 논란이 생겨서 별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에바 코믹스에서도 이 이야기를 또 다른 관점에서 재탕하기도 하고, 에반게리온 소설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애니, 만화, 소설, 게임까지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같은 내용이 반복된, 일종의 하나의 세계에 가까웠고 이러한 반복은 당시의 일본어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매체로 볼 때도 이미 어떤 상황이고 내용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다.
티비판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화는 “순간, 마음은 하나 되어”의 가볍고 밝은 분위기였고, 각화의 옴니버스적인 특징들과 그 화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표현하는 제목과 영어 주제도 꽤 좋아했었다.
제목과 더불어 각 화 하나하나가 담는 메시지나 주제가 확실한 편이어서 그런 부분들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벌써 10년 전이 되어가는 신극장판 개봉 당시에는 개봉일 극장에서 보기도 하고,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보기도 했다. Q까지도 극장에서 봤다.
신극장판 서의 경우는 티비판과 아주 어긋나는 부분은 적지만 워낙 티비판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장면 장면의 신지가 이어폰을 하지 않았는데 하고 있다던지, 저 장면은 비가 안오는데 비가 온다던지 하는 작은 변화들을 느끼며 그런 변화들을 꽤 재미있게 보았다. 라미엘이 최종 보스처럼나오면서 신지가 무슨 지구를 지키는 수호자나 영웅처럼 나오는 서사는 조금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게 보았다. 새 주제곡 Beutiful would는 꽤 좋아한 편이었는데 “만약 소원이 하나 있다면 당신 옆에서 잠들고 싶어.”라는 가사가 엔드오브에반게리온에서도 느꼈던 에바의 밖으로 잘 표현되지 않는 사람의 소망이나 마음 상처를 드러내느는 것으로 느껴져서였다.
그리고 티비판의 줄거리와 크게 궤도를 비튼 파를 보고서는 정말로 당시에 전율을 느꼈다. 안노가 있던 가이낙스 시절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봤던 나는, 에바에 등장하는 카레카노(그남자 그여자) OST들이 신선했고, 그렇게 카레카노 OST가 쓰여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만큼, 학원물 처럼 경쾌하고 가볍게 흘러가는 에바가 낯설면서도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판 화중 하나가 “순간, 마음은 하나 되어”인 것처럼 나는 이러한 가벼운 개그 터치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26화는 다른 의미로 참 좋아하지만) 그러나 전율이 일었던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는데, 아야나미가 “내가 죽어도 대신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에바안에서 예상한 부분이었는데, 거기에 “아니야! 아아냐미는 아야나미 뿐이야!!”라고 소리치며 대답하는 신지의 대답에 가슴을 뛰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신지의 한마디에 마치 망치를 얻어맞은 것 같았고 마치 10년의 세월에 걸쳐 에반게리온2에서도 내내 서드임팩트만 일어나던 에반게리온 세계가 움직이고, 움추려들어있던 신지가 드디어 한발 앞으로 내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에반게리온 극장판 파를 정말로 좋아했고 크나큰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멈춰있던 시계가 처음으로 움직인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You Can (Not) Advance라는 영어 부제와 더불어서도 크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파의 감동 덕분에 더 기대를 안고 본 에반게리온 Q는 매우 실망했었는데 이 장장 2시간짜리 작품이 나에게는 티비 24화의 길고 긴 재탕같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전개되고 흘러가면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어떻게 될지가 모두 예측이 되었고 그것은 예상 그대로 흘러갔다. 예상을 비틀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주었던 파와는 정 반대의 느낌이었다. 등장한 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지부진한 신지였고, 그의 옆의 카오루였다. 기껏 파에서 에반게리온 TV판 전시리즈를 넘어선 신지를 만난 것 같았는데 다시 티비판 24화를 그것도 두시간이 넘는 긴긴 시간에 걸쳐서 재탕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물론 가이낙스 팬이었던 나로서는 분더가 출항할 당시에 퍼지는 나디아의 뉴 노틸러스 BGM이 반가웠다던가 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지만 Q서사 자체에는 크게 실망한 편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카오루와 신지를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극장판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교류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신극장판에서는 그들의 교류를 좀 더 직접적으로 피아노를 통해 연출했다는 정도였다. 이러한 그냥 길고 긴 24화의 재탕을 본 듯한 느낌은 역시나 영문 부제인 You Can (Not) Redo와 맞아떨어지면서 아니 한발 나간줄 알았던 신지는 이전의 것을 반복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반게리온 최종편에 대한 기대도 많이 줄어든 편이었다.
Q이후 이 마지막 에반게리온 도돌이표, 혹은 리피트(다카포로도 잘못 알려진), 3.0+1.0은 굉장히 늦게 나왔다. 그래서 그 사이에 나의 에바에 대한 감상도 바뀌어서 어떻게 보게 될까 싶기도 했는데 옛 애정으로 작품을 보았다.
(신극장판 마지막편 다카포(리피트) 감상은 다음에 계속)
2021.09.07 - [애니] - 에반게리온 다카포 다시보기 (에반게리온 리피트, 도돌이표), 감상
2021.09.08 - [애니] - 에반게리온 보는 순서, 어떤 순서로 볼까?
'애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반게리온 보는 순서, 어떤 순서로 볼까? (0) | 2021.09.08 |
---|---|
에반게리온 다카포 다시보기 (에반게리온 리피트, 도돌이표), 감상 (0) | 2021.09.07 |
다이아몬드 에이스 act2 (ダイヤのA, Ace of Diamond), 넷플릭스, 왓챠 애니 추천 (0) | 2021.09.05 |
추억의 애니&만화 / 피그마리오 ピグマリオ, 피그마리오의 안타고니스들 (0) | 2021.08.23 |
추억의 애니&만화 / 피그마리오 ピグマリオ(MBC 1994), 신화적인 이야기 (0) | 202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