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라이프

디지털시대가 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과 타블렛의 도입은 그 이전과 이후의 생활패턴을 획기적으로 나누는 한 갈림길이 되었다.

지금도 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유행은 지금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고,
이러한 서비스 가입으로 인터넷을 통해 매체를 소비하는 일이 늘고 있다.

나는 디지털과 컴퓨터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를 직접적으로 성장과정과 더불어 겪은 세대이다.

나는 컴퓨터를 일찍 구입한 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연히 방문한 친척 집에 흑백 286컴퓨터가 있었고 미술을 좋아하던 나는 그 컴퓨터 그림판으로 타원과 네모 흑백 색칠을 이용한 그림을 하나 그려보고 참 재미있어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386컴퓨터를 사주었다. 컬러, 큰 플로피디스크, Dos, M, 윈도우 3.0 등. 물론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컴퓨터는 게임기에 가까웠고 당시 컴퓨터 게임인 삼국지2, 1994, 한국 테트리스 등을 했다.

그 이후에 게임 콘솔도 구입해서 슈퍼컴보이로 슈퍼마리오 월드, 드래곤볼 초무투전2, 슈퍼 동킹콩1,2, 성검전설 등 당시 유행하던 게임들을 즐겼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들면서는 한글 등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학교 숙제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 컴퓨터는 여러번의 신기기로의 변경을 거쳤고 작은 플로피디스크나 씨디 등의 등장을 하나씩 겪었다. 그리고 그 사이 컴퓨터로 하는 게임도 계속 늘어갔다. 삼국지3, 대항해시대 2, 3, 4, 도키메키 메모리얼, 에베루즈, 워크레프트2 등등.

인터넷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화선으로 연결하는 PC통신이 등장한 것은 초등학교 한참 고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당시에 조금은 덜 주류였던듯한 유니텔을 했고 주로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카페에서 활동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PC방이 보급되고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었는데, 나는 그때부터 게임을 끊었다. 워크래프트2를 했기 때문에 시물레이션 게임 자체를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PC통신 게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습관으로 지금까지도 나는 게임을할 일이 있으면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콘솔게임을 주로 즐기는 편이다. 온라인게임은 딱한번 친구들의 권유로 마비노기를 대학때 해본 적이 있는데, 2달정도 바짝하고 어느새 엄청난 과금을 시작하고 있던 스스로를 발견하고 끊었다.

온라인 게임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퍼지기 시작한 인터넷의 영향은 컸는데 나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당시의 html을 이용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팬 페이지로 시작해서 2학년때는 내 이야기를 담은 개인 홈페이지로 바꾸었는데, 당시에는 블로그 같은 형식이 아니다보니 소통 창구가 홈페이지에 다는 방명록이나 게시판 정도였다. 당시에 워낙 개인 홈페이지들이 적어서 웹빌리지어워드라는 개인홈페이지들을 소개하고 심사하는 민간 단체가 있었을 정도이다.

이 개인 홈페이지를 친구와 함께 운영하다가 나중에 다시 혼자 운영하고, 2001년부터 내 도메인을 쭉가지고 있었다. 이 개인홈페이지는 2011년까지는 계속 이어졌고 그 사이에 포맷도 cgi의 카와이북이라던가를 쓰다가 제로보드를 쓰다가 하면서 플랫폼들도 변화를 겪다가, 티스토리를 홈페이지 형식으로 디자인해서 한동안 운영했고, 그 이후에 텍스트큐브와 워드프레스까지 옮겼다가 그 이후로는 온라인에 대한 생각 자체가 변화가 생겨서 문을 닫았다. 블로그로 바꾼 이후로는 정보공유나 생산적인 공간이라기보다 거의 공개 일기에 가까웠던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긴 세월 덕에 꾸준히 찾아주는 분도 더러 있었고 나도 가뭄에 콩날정도로 간간히 글을 올리곤 했다.

이렇게 꽤 일찍부터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운영하는 인터넷의 내 공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첫째로는 포털에 대한 접근이 크지 않은 편이었다. 컴퓨터를 켜면 포털에 처음 들어가는게 아니라 내 공간에 먼저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중에 유행을 타게 된 사이월드나 네이버 블로그 등에 거의 적응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찌보면 미리 미리 경험한 얼리어댑터이고, 다르게 보면 크게 유행을 하던 데는 동참하지 않은, 그 문화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자유롭게 디자인한 내 공간을 가진 것에 익숙하다보니 이미 형식이 갖춰진 플랫폼이 답답했다. 이건 현재도 영향을 끼쳐서 다시 글을 쓰는 공간을 인터넷에 마련하고자 생각했을때,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 등의 훨씬 사람들이 찾기 좋은 접근성이 뛰어난 공간들이 떠올랐지만 막상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하기에는 딱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티스토리 정도는 어느정도 자유도가 있으니 고려해볼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있었던 백업기능이 사라져서 혹시라도 이사하게 될 것을 고려하면 주춤하게 된다. 내가 사용하던 도메인은 2018년까지는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그해 돈을 내는걸 깜박해서 다른사람에게 넘어가버렸다. 새 도메인을 구할지는 의문이다. Minimalist seeker정도가 되려나.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운영했던 홈페이지는 내 삶의 작은 일부였음에 틀림없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행간에 숨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언제든지 내킬때 글을 쏟아내기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 홈페이지를 닫은 2011년은 개인적으로 한번 큰 변화를 겪은 때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트위터와 비슷한 미투데이, 트위터, 페이스북, 일본에서 살 당시에 유행했던 믹시 등의 SNS들이 막 유행의 붐을 일으킬 때이기도 했다.

미니멀리즘 라이프


이 2011년 즈음이 미니멀리즘의 시작단계였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당시에 물질이나 관계 등에 대해서 사고를 계속 적곤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디지털에 대한 접근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줄인 것은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 가까웠다. 하던 취미생활의 특성과 외국 친구들과의 연결 때문에 탈퇴는 못하는 페이스북은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는, 아주 필요할때 연락을 위해 쓰는 메신저였고(스마트폰 메신저가 더 활성화되기 이전에) 트위터 등은 일절 가입하지 않았으며 포털에도 더욱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거치며 원래도 둔감했던 사회의 유행이나 트렌드, 당시의 이슈에는 더 둔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디지털의 이용빈도 자체는 올라갔다. 나도 2009년부터 아이폰 3gs로 시작해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아이패드2로 타블렛 PC도 쓰기 시작했으며, 이런 기기들은 사회가 그렇듯이 나 자신의 반경도 크게 바꾸었다. 폰은 3gs,4s,5,SE로 아이폰만 써왔다. 2017년 이후로 핸드폰을 안바꿨으니 이후 신종 기기들에 대한 정보는 어두운 편이다. 아이패드도 구형 2,3만 써봐서 펜이 되는 모델은 써보지 못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경우는 느리고 버전이 낮고 기능의 제약이 많은 전자책으로 처음 접해서 제대로 접했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나씩 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대체해가기 시작했고, 버스 알림을 받고, 이미 이전에도 컴퓨터로는 예전 인터넷 초창기의 ICQ나 MSN 네이트온을 써왔지만 그와는 접근성 자체가 다른 메신저를 쓰기 시작했고(내 생활 태도가 바뀌어서 대화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다니던 디지털 카메라나 mp3플레이어를 아이폰이 대체했다. 그리고 아이패드로는 북스캔으로 책을 읽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eink리더기를 알게 되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이용했다.
첫 기기는 sony의 Trs-T1이었고 가장 많이 이용한 기기는 M92로 읽은 스캔본들과 T62의TTS로 함께 읽고 들은 일본서적들이다.

그외에도 이용한 기기는 킨들페이퍼화이트, 킨들4, 코보 미니, 파이루스HD, thersa, 요타폰2 등이 있고, 잠깐 거쳐간 기기는, 젯북 컬러, 킨들 키보드, 누크3, 코보 HD, 오닉스 6인치, 라이크북 마르스 등이 있다.

현재는 라이크북 아레스를 주력 기기로 가지고 있지만 갤럭시탭S5e를 더 이용하고 있다.
적어보니 큰책 작은 책 등 용도별로 다르다고는 해도 휴대폰이 4번의 기변을 하는 사이에 꽤 많은 리더기를 만져봤다.

여기서 전자책 기기의 취향이 드러나는
한때 가볍고 작은 한손에 들어오는 가볍고 기기를 선호했고
TTS가 되는 안드로이드 기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터치가 안된는 기기들을 선호했는데, 그래서 전자책은 안드로이드 계열은 책을 읽을 때 터치방지 어플을 꼭 설치하는 편이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자세히 더 이야기할 날을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전자책으로 독서의 시작은 나에게 다른 하나의 장을 열어주었는데, 0페이퍼, 조금씩 가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디지털화였다. 직접 제단기와 디지털 프린터기를 구입했다. 큰 책장 3개가 넘어가게 책이 많았고, 일본 만화 원서와 한국 순정만화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다 디지털화했다.

그럴 수 있었던 큰 계기는 당시에 내가 M92로 스캔본들을 꽤 잘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거운 책보다 가볍게, 한페이지씩 집중하면서.

당시에는 게으름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자 연구하던 시기라서, 누워서 독서대도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참 잘 이용했다. 아직 전자책에 블루투스 리모콘은 생기기전이라 터치펜을 젓가락으로 연결해서 긁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직접 활용을 하는 경험을 하디 않았다면 디지털화 자체를 시도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 조승우가 읽던 책의 싸인본이라던가 좋아하는 만화책의 초판 1쇄본 등등도 있었는데 모두 디지털화하고 처분했다.
여전히 종이책으로 읽는 책도 있었고, 읽고난 책을 나중에 색인용으로 디지털화 하기도 했다.
현재 디지털화의 가장 큰 장점은 TTS이다. 책읽어주기 기능을 많이 이용하면서 전자책은 꾸준히 읽고 있다.

책이 내가 가진 물건 중에 가장 덩치가 크고 무거운 물건에 속했던 편인 것을 고려하면, 이 책의 디지털화는 물질적인 물건의 미니멀화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디지털화 한 것이기 때문에 물건 자체를 완전히 없앴다고 하기 보다는 다른 형태로 보관 형식을 바꾼 것에 가깝지만.

이 디지털화는 당시 내가 가진 더 디지털화가 쉬운 CD, DVD 등에 이어졌다. 아직까지 디지털화를 마치지 못한 가장 큰 소유물은 비디오테이프인데, 이것은 디지털화 자체의 어려움보다, 단순히 갯수의 양이 너무 많아서이다. 어린시절 당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을 녹화해서 보는 것이 일과였고 그렇게 쌓인 테잎이 많다. 그리고 그 역시 내 삶의 한 축이었기때문에 쉽게 버리기가 힘들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물건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은 언제나 물질 자체의 가치보다도 이런 마음이 매긴 가치이다. 이른 경우 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존중해주었다. 임시 박스를 만들어서 일단 안입지만 처분 못하는 옷들을 넣어두고 나중에 한번 더 체크한다던가. 그러면서 마음이 그 물질과 이별할 시간을 천천히 준다.

단순히 다운사이징, 물건을 다 없애는 것이 내가 이해한 미니멀리즘은 아니다. 미니멀리즘은 없애기가 아니라 무엇을 둘지 결정하기에 가깝고, 남긴다면 무엇이 나에게 소중한지, 필요한지, 내 곁에 두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단순히 싸다고, 생겼다고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나에게 가지는 가치와 앞으로 살아갈 삶을 일구는데 어떤 영향을 줄지를 고려해가는 과정이라고 할까. 그저 물건을 다 버린다면 그만큼 부작용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사실 마음이 준비가 안되었기때문이다. 오히려 반작용으로 다른 것을 더 사버릴 수도 있고, 아까운 생각이 가득 찰 수도 있다. 미니멀리즘은 후회할 행동을 일부러 하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곤도마리에의 "설레는 물건 남기기"는 의미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건 줄이기의 과정은 그 안에서 내면과의 대화가 꾸준히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다운사이징이 계속 진행중인 현재진행형 미니멀리스트이다. 이번에 한차례 줄이고 다음에 또 줄일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한번에 마음 속에 있는 골로 직진하지 않고 시간을 준다. 또 어떤 물건은 그때의 생활 패턴에 따라서 늘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물건을 가진 갯수가 아니라, 그 당시에 얼마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물건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잘 갖추고 정돈하고 쓰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정돈방식도 그때그때 가진 물건의 양과 질에 따라서 달라지고, 미니멀리즘의 과정 자체는 계속된다. 물건이 어느 순간에 달하면 더 이상 구입을 중단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물건은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수명이 있다. 아무리 아끼는 물건도 그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끼는 옷이라고 입지 않고 걸어만 두면 그것은 그 옷이 더이상 옷으로서 기능하며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입는다면 언젠가는 닳아서 못 입게 된다. 물건의 흐름의 빠르고 느림도 있고, 빈티지 처럼 옛 물건을 꾸준히 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그 물건이 그 물건으로서의 기능을 끝낼 때가 온다. 그것이 물건 자체가 기능성을 잃어서건, 사회의 유행에서 뒤쳐져서든, 마음에서 효용이 끝났던. 이 흐름 자체와 자신의 소비 성향도 지켜봐야 하는 것중 하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물건의 흐름이다. 새 옷이 필요해서 샀다. 그러면 헌옷중에 뭔가를 처분한다. 그럼 물건은 늘지 않고 효용을 하는 물건들의 흐름은 이어진다. 이 흐름이 막히게 되면 물건의 기운이 고이고, 물건에서 사용하지 않으면서 나오는 짐같은 기운이 나오게 된다. 흐름이 막히면 고이고, 정체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어느 골이 있어서 달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꾸준히 언제나 진행중이느것이다. 그러나 그 길 속에 처음 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물건이 많이 줄고, 또 준 부분은 쉽게 다시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미 줄이는 과정을 마음에게 시간을 주면서 거쳐서, 마음이 그 줄어든 만큼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데, 나는 샴푸바를 썼다가 노푸를 했다가 요즘은 다시 샴푸를 쓰고 있다. 이런식으로 방식이나 패턴이 바뀌면 쓰는 물건은 늘거나 줄어든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단순히 샴푸를 없애고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머리도 지금은 짧은 머리인데 긴 머리를 할때는 머리끈이 많았다. 다시 머리가
를 기르게 되는 날이 있으면 머리끈이 필요해질 것이다.

머리끈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잘라서 머리끈을 오랫동안 안쓰게 되어 처분했다. 미니멀리즘은 물건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 방식과 패턴 자체와 물건의 관계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는 그 이전까지 매년 손으로 적던 수첩의 스케줄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때 잠깐 전자수첩을 사용하며 스케줄을 정리한 적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항상 손으로 적었고 특히 대학시절에는 그랬다. 그 때의 수첩을 보면 직접 손으로 그린 달력과 스케쥴들, 스케쥴이 변경되어 지우고 다시 쓴 흔적들, 뒤쪽에 끄적인 메모들과 낙서 그림들 단상들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때로는 노트에 글을 적기도 했다. 그런 노트가 한번씩 있었다. 노트 제목은 낙서였고, 권이 나갈때마다 번호를 붙여갔다. 그 낙서라는 노틍에 매일 글을 쓰고 하루에 그림 하나씩을 그리던 시절도 있었다.

예전 스케쥴러에서 적었던 단상과 흔적들은 내가 쓰는 아이폰 스케쥴 달력 어플 버티컬 캘린더에서는 구현이 되지 않는다. 애플펜슬을 쓰거나 S펜을 쓰면 좀 다를까? 그래도 그 느낌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종이장의 냄새, 종이를 넘길 때의 촉감 등등이 같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홍대 플리마켓에서 마음에 드는 노트를 찾아서, 1년동안 쓰고 다음해에는 노트를 제작하는 분께 맞춤 크기로 노트를 두권 더 예약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는 유명 문구점 로프트 다이어리 코너에서 꼼꼼히 물건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스케쥴러를 찾아서 쓰기도 했다. 매일 하루하루 그날 감사했던 일을 메모로 남기는 스케줄러였는데, 꽤 좋아했다.

그러나 아이폰 스케줄 달력 어플을 쓰며 이런 아날로그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디지털은 물리적인 물체로부터 많은 자유로움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언제나 놓지 않는 작은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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