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최초의 독자는 나 자신이다. 글도 어떤 의미에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글은 어떤 의미에서든 그래서 글쓴이의 반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일부가 고스란히 글에 담기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것일 수도, 혹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자신이 모르던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속에서 엉켜서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이 풀어지기도 하고 혹은 속에 담은 감정을 걸러내기도 한다. 그러한 글은 글을 위한 글과는 다른 것이다. 사실 글을 위한 글도 그 글을 위한 글을 써내려간 행간까지 글 속에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내 글의 독자가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글을 통한 만남이 가능했기에 i and i, 이안디라는 이 오랜 이름의 웹페이지가 이름대로의 구실을 하지 않았나싶다...
글쓰기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글을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글이라는 것도 결국 표현 도구의 하나이다. 속에 있는 무엇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끄집어낸다. 때로는 악기로, 노래로, 몸짓으로, 춤으로, 그림으로. 말이라는 것이 담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유한한 일부에 지나지 않고 사람들이 글을 통해 읽는 것은 단순한 그 글자가 아니라 행간이다. 그 행간 속에 담긴 무엇까지 포함이 된다. 그래서 언어라는 것도 하나의 축복이다. 다른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지식의 확장 이상인데, 언어를 통해서 다른 문화권의 사고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각도, 틀을 새롭게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는 그 자체로 굉장한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다. 또한 외국어를 통해서 다른 소통방식, 생각의 틀, ..
이전에 책읽기에 특화된 안드로이드 설정을 위해서 "재생/멈춤" 키와 "터치블록"키를 안드로이드 프로팅 버튼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어플 내부에 있었던 기본 이미지 중에서 고양이랑 코알라 그림을 사용했었는데, 버튼 그림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으로 정말 즐겁게 했던 게임인 킹덤하츠 그림으로 바꿨다. 그래서 내 안드로이드 화면에는 지금 킹덤하츠 캐릭터들이 떠다니는데, 고양이랑 코알라도 귀여웠지만 이것은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특히 좋아하는 캐릭터나 사물이 있다면 이렇게 플로팅 버튼으로 원하는 기능을 넣어서 띄워 놓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그냥 떠 있는 그림이 아니라 기능적이기도 하니 일석 이조. 킹덤하츠는 "영어 공부에 괜찮은 게임이 없을까?"란 질문에 내 취향이 고려되어서 추천받..
디지털시대가 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과 타블렛의 도입은 그 이전과 이후의 생활패턴을 획기적으로 나누는 한 갈림길이 되었다. 지금도 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유행은 지금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고, 이러한 서비스 가입으로 인터넷을 통해 매체를 소비하는 일이 늘고 있다. 나는 디지털과 컴퓨터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를 직접적으로 성장과정과 더불어 겪은 세대이다. 나는 컴퓨터를 일찍 구입한 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연히 방문한 친척 집에 흑백 286컴퓨터가 있었고 미술을 좋아하던 나는 그 컴퓨터 그림판으로 타원과 네모 흑백 색칠을 이용한 그림을 하나 그려보고 참 재미있어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386컴퓨터를 사주었다. 컬러, 큰 플로피디스크, Dos, M, 윈도우 3...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좋은 글쓰기 연습이다. 브런치의 깔끔한 느낌이 좋아보이고 양질의 글들이 끌리면서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 남의 집(?)에 글을 쓰는 느낌이고. 이안디는 내집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하다. 사실 티스토리도 툴을 빌리고는 있지만. 예전 이안디도 나중에는 도메인만 포워딩 한 채 이글루스에 기생해서 살았지만. 디자인만은 내맘대로 손을 보긴 했었다. 홈페이지를 거쳐서. 이글루스 기생이후에는 거의 이안디를 닫기까지 얼마 안된 시간동안 이안디를 유지했는데, 그때 티스토리 보다는 테터툴즈에 잠깐 그리고 워드프레스를 썼었다. 워드프레스도 참 좋은 툴이지만 한국어 검색 유입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시의 워드프레스 스킨도 꽤 마음에 들었었는데, 언제나 막상 그렇게 ..
나 스스로가 인문학 책을 읽은지가 한참 지났다. 그래서인지 출판계가 죽은 느낌을 가진다. 원래도 많은 이들이 읽지 않았고, 내가 우연히도 그 '많지 않은 이들' 틈에 있었던 적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사랑한다. 그 시간속에는 어떤 향기가 있었다. 아마 그래서 퍽이나 따뜻함을 느끼나보다. 그 넓고 깊은 세계와 접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그래서 반짝이게 느낀다. 스펙,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때를 기억한다. 그런 잣대와는 다른 줄기가 그 시간 안에는 있다. 아마 그 속에 있는 알맹이가 스펙이라는 포장지와는 다른 진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울리는 경험. 그 어떤 한줄. 한 장면. 삶을 속에서부터 채우는 것들. 인문학 공부가 준 것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시간..